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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대한민국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국군 TMO 공군파견대장 병장 이야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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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1

76년 11월 1일 275기로 난 공군에 입대를 했다. 입대전 나는 가수였다. 74~76년도 이욱성이라는 예명으로

 

슬픈졸업생, 떠나가야해를 불렀고 ,그때당시제법알려짐.,입대하는 하루 전 까지 동아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훈련소에 입소하니 이욱성 앞으로 나와! 동기생들 중에서 나를 모르면 간첩이였다.

 

노래사역은 또 얼마나 많이 했었나... 내 노래보다는 주로 그당시 히트쳤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18번이되었다.

 

신병훈련 야간 점호시간에 연병장으로 빨리 나오라는 반복된 교육으로 그래 내가죽나 너희가 죽나 하는

 

심정으로 2층에서 뛰어내려 신병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 전설은 후에 290기인 친동생이 신병교육대에서도

 

전설로 전해들을 정도였다. 그 덕에 1주일 정도 의무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간신히 나왔지만 그 후에 받는

 

훈련은 모두 참관만 했고 지나가는 중령이 넌 왜 훈련안받냐 하면 제가 2층에서 떨어져서... 아 그게 너야

 

그럼 쉬어라. 할 정도였다. 훈련이 끝나고 항공운수(TMO)특기를 받아 공군에서 가장 악명높은 대구(K2보급창

 

내무반 - 그당시 해골창으로 불림) 신병대처럼 1, 2층에서 전달을 외치면서 전역병장 제대 1주일 전부터

 

노래사역 사역 끝나고 막걸리 소주를 얻어먹고 (난 사회있을때는 술을 잘 못마셨음) 2층 내무실에 와서

 

드디어는 총각틀에 오줌까지 싸는 대형사고 매일 새벽에 깨우는 윗 고참들에 세면장 구타사건, 기수별로

 

군화닦기 등등... 하루에 잠을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 이건 너무 맞아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고

 

그때는 왜 그리 때리는지 특히 대구 본토 고참들 안그래도 문제사병(사회에서 노래했다는 이유로)이였기에

 

6개월 가까이 K2에 있었지만 주어진 보직이 없었고 칼빈메고 사무실 앞 보초 오후에 사령부 편지수령등등

 

내무실에 오면 또다시 노래사역 아 정말 죽고싶은 심정이였다. 그 당시 TMO파견은 1년 미만 군생활 한 자가

 

나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나 나는 정확히 77년 4월 20일경 일병 진급이 5월 1일이니까 6개월이

 

안된 시점에 파견을 나왔고 고참들은 (그래 넌 나가야되. 여기 더 있다가는 죽는다는 둥 불쌍하다는 둥) 인정을

 

배풀어 파견 나옴에 전혀 불상사가 없었다. 당시 서울역, 영등포역은 이미 TO가 꽉 찼고 육군부대내에 있는

 

TMO본부에 파견나올 수가 있었다. 억지로 만든 보직이라할까.. 서울 노량진 소방서 뒤에 있는 육군부대에

 

공군 장교와 같이 상황실에 근무하게 되었다. 파견나올 때 들은 얘기로는 육군부대에 가는 것이니까

 

무조건 용산역에 가서 계급장을 병장으로 달고가라는 고참말을 듣고 다블빽에 있는 모든 군복에까지

 

병장으로 마이갈이를 달고 드디어 77년 4월 20일 육군부대에 입성했다. 정문을 지키는 위병들도

 

멋진 공군을 보니 할 말이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공군중위(학사장교) 박동운이 야 이놈봐라

 

일병도 안된것이 병장달고와? (당시 상황실에는 육군사병이 15명 정도 장교, 하사관, 해병대위, 해병하사

 

총 30명 가량이 일제히 나를 보는게 아닌가) 정말 이럴수가... 완전 망신인 순간이다. 쥐구멍이라도 숨을

 

심정이었다. 박중위가 육군하사를 부르더니 이 놈 오늘부터 내무반 생활시켜 데리고가 아니 이럴수가

 

이게 끝발부려 올라온 파견 생활이란 말인가.. .그럴수는 없었다. 일단 육군 내무반으로 가니 우린 관물함에

 

모든걸 비치하는 시스템이고 육군은 잠자리 위에 쌓아놓는 방식이었다. 저녁 점호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 뿐이었다. 또 식당에 가보니 1KM이상 줄을 서있는데 내가 있을곳이 도저히 못되었다. 다음 날 나는

 

박중위와 담판을 지었다. 따블백은 집에다 두고 식사는 공군본부에서 수령해오는 쌀 부식비 등을 장교식당

 

주방에(민간인이 운영) 두고 부쳐먹기로 했다. 계급은 하나만 띠고 상병으로 하고 영외자 퇴근 후에는

 

2층 상황실에서 육군 사병과 같이 책상에서 잔다고 허락을 받았다. 박중위도 얼마 안있으면 말년이라

 

좋은게 좋은 식이었다. 허나 단 하나 출퇴근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때 우리집은 (강남 영동시장 근처에

 

있었다.) 나는 영외자가 퇴근하면 자유롭게 얼마든지 정문을 나가 인근 수산시장에서 술마시고 놀고

 

대방동 공군부대에도 마음대로 출입이 가능했고 그야말로 영외자 생활을 할 수가 있었지만 집에는

 

가급적 토요일 업무가 끝나면 갔고 월요일 일찍 귀대하는 원칙을 세웠다. TMO본부에서 하는 일은

 

모든 각 군이 신병훈련병 수송과 항공기 기름수송등 열차가 급히 필요한 경우 철도청에 의뢰해서

 

육군주도하에 공군, 해군이 할당받는 일이었고 아마도 여러분이 신병교육 끝나고 대전발 0시 50분

 

군용열차를 탔던 곳도 내가 지령을 내렸다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외에 갑자기 병력이동시 필요한

 

열차확보 또는 군용열차에서의 사고 공군 각 역에 나가있는 TMO요원의 상황보고 및 근무태도 보고 등등..

 

그 때 나는 공군이지만 육군 사병들과의 상황실에서 친분이 많았던 터라 틈틈히 소주잔을 기울였고

 

술자리가 끝나면 책상위에 메트리스 깔고 취침하였다. 상황실이 철뚝길 옆이라 열차 소리가 왜이리

 

시끄러운지 술을 안먹으면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을 정도였다. 술에 취해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군화를 신은채로 육군은 쫄병이 와서 군화 다 풀러주고 옷까지 벗겨주고 담요까지 덮어주었다.

 

아 쫄병없는 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1년 6개월 파견생활이 끝나갈 즈음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TMO가 생긴다는 소식을 알고 결국 공군 창설멤버로 그곳에서 1년간 더 근무하고  제대 보름앞두고

 

자대인 K2로 내려가 보니 왠 쫄병들이 그리 많은지 1, 2층에서 나만 보면 필승 필승 하는데 화장실에서

 

만나도 필승 식당에서 만나도 필승 아 저절로 웃음이 나고 힘이났다. 아 난 군생활을 해도 쫄병하나

 

없이 30개월을 했구나. 이게 군대인데 귀여운 쫄병들... 물론 터미널 TMO에서는 공군 방위병이 있었지만

 

출퇴근하는 친구라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공군보다는 육군에 아는 애들이 더 많았고 하도 마이갈이 병장을

 

오래 달아서 터미날 육군 제대 말년 병장이 동급 취급했다가 그 친구 제대하고 6개월 있다가 터머널에

 

놀러왔는데 난 아직도 근무하고 있는 헤프닝이 벌어져 웃지못할 일들이 참 많았다. 허나 그 때

 

터미널과 TMO본부에서 배운 모든 메모정신, 혼자 근무했기에 내가 책임자라는 사명감으로

 

근무해온게 아마도 지금 작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터미널에서 같이 근무했던

 

해병하사 설학수는 그 후 소방관이 되어 자주 만났는데 얼마 전 3월달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지금 내가 해병 설하사 얘기를 언급하는 것은 앞으로 군대 이야기에 해병 설하사와의 얘기가

 

(동키호테같은 이야기)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름을 꼭 밝히고자 한다. 지금도 그때 보직으로

 

모든 역에 있는 TMO라는 간판만 보면 35년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같이 근무했던

 

육군대위, 육군상사, 해군중사,  모두 형님으로 통했던 시절이었다. 왜나는 항상 제대가

 

내일모래 였으니까...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국군 TMO 공군 파견대장 병장이라는 자부심으로

 

그때 당시 3만명(그때 당시 공군은 3만명 병력이었음) 공군을 책임졌던 터미널 공군 역장으로서

 

아무 탈 없이 군생활을 마친 저를 뒤돌아 봅니다. 필승!

 

[78~79년 9월초까지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한 장병 여러분은 저를 기억하실런지...]

 

앞으로 공군 파견대장 3군 이야기가 계속 올려질 것을 약속합니다. 필승!

 

 

 

 

 

 

 

 

 

 

  • 이길성 2012.03.13 15:53:59 삭제
    네 기억납니다 제후임으로 왔던 분인데 혹시 김주성아닌가요 졸병이처음왔지요 제대 한달인가앞두고 안내양이아니고 속리산고속 매표양입니다 집이근처라 제대후에몇번놀러갔는데 연예하고있더군요 지금도잘사는지 주성이맞읍니다 제후임 보고싶내요 그때기억으로 미라씨였나 우릴 많이도와주던아가씨인데 표부탁말이죠 티엠오특기들 함연락합시다 김주성 보고싶다
  • 박치룡 2012.03.13 16:56:01 삭제
    졸병때 우리내무반 선배님이 강남터미날 근무할때 고속버스 안내양하고 결혼 했었습니다.김병장님인데 오래되서 이름이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 박치룡 2011.05.22 01:09:48 삭제
    한참 선배님이시네요.
    부산역TMO에 근무한 326기 입니다.
    그당시 육군들에기 기 안죽을려고 저도 일병때 마이가리 병장으로 병장계급장을2년 달고나니까 모자에 계급장이 걸레가 되더라구요.
  • 정기욱 2011.05.12 23:52:06 삭제
    ㅎㅎㅎ 잘 알고 기억나는 길성이...
    나하고 신병대에서 대화도 많이 했었는데
    tmo로 가고나서 자주 볼 수 없었지....
    언젠가 얼굴 함 보세나 동지~~~
    010 4646 7899 정기욱
  • 김관남 2011.04.27 09:36:16 삭제
    ㅎㅎㅎ 정말 파란만장의 군생활이시네요..
  • 문경언 2011.04.25 16:14:24 삭제
    이길성 후배님! 반갑습니다...
    좋은 이야기 잘읽구 갑니다...
    다음에도 좋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ㅎ^
  • 김병걸 2011.04.25 07:30:30 삭제
    이길성병장하고 동깁니다. 언젠가 가수현역시절에 받은 팬레터 한박스를 보여줘 짚히는대로 몇개 읽어봤는데 당시의 인기는 대단했더군요 특히 기억나는건 온양의 곽월숙이란 팬의 편지였습니다. 레터의 내용은 그냥 평범했는데 이름이 참~ 정감이 가더라는...^^
  • 원용찬 2011.04.23 13:00:59 삭제
    이길성후배님이 이욱성가수라니 반갑군요.
    제가 군에있을때 많이 노래들었었는데....
    약속시간이란 노래도 부르셨죠?
  • 지영철 2011.04.22 16:34:24 삭제
    아하이병장님 그땐 나보다고참인줄알았는데 ...쫄이였네 반갑네요 할인권잘받아 대전까지 잘다녔읍니다 군대예기기대하겠읍니다
  • 이길성 2011.04.22 12:32:11 삭제
    허선배님 죄송하군요 공군 티엠오본부로연락하셨음 자대복귀감인데..저보다오년전이라 어려운시대 대신사과합니다 필승 앞으로 군대이야기기대하세요 있었던추억 그대로올리겠음다
  • 허규철 2011.04.21 22:47:25 삭제
    이길성후배님 다음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저보다 5년정도 늦게군생활했지만 추억이새롭네요 대전에서 자대배치 받고 대전발0시50분 탈때 TMO 에서 공팔이 당한생각이 어제같네요 온갓공갈로 신병들한태 얼마씩걷어 드린것 좋은추억으로 생각하고싶네요 재미있는이야기부탁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