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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해병 설하사 이야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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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고속버스터미널 창설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78년 초봄이나 늦은 봄이라 생각한다.

 

국방부에서 전우 신문기자들이 달려오고 사진을 찍고 야단법석을 떨고 책상에 앉아 근무하는

 

TMO요원들을 사진찍어 그 다음 날 전우신문 1면에 고속버스터미널 TMO창설이라는 글씨에

 

우리들의 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어디를 가나 스타는 스타야...

 

나는 이미 TMO본부에서 근무하던 경력이 있던 터라 공군이지만 전혀 기죽지 않았고

 

오히려 육군과 해병이 본부에서 근무하고 온 나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상급부대에서 근무한 경력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TMO장은 육군 대위였는데 나보다 나이가 3살 많았고 나 역시 TMO장 알기를 우숩게

 

알았던 때다. 육군 병장은 거의 말년이었고 해병하사 설학수는 해병하사 123기로 입대 날짜가

 

나보다 5개월 정도 고참이였다. 나는 항상 말년이라고 속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TMO 내무반에서 같이 자고 하는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이는 해병하사와 내가 동갑이고

 

육군병장은 한살 더 많았다. 같이 근무했던 육군 일병은 우리보다 한살 아래였다...

 

그래서 나와 해병하사는 출신도 서울 지역이라 더욱 더 친해졌고 급기야 반말하는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같이 자고 먹는 처지이니 무슨 계급이 필요있겠는가...

 

때는 1978년 추석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을 즈음 추석 고속버스표를 사려고(예매) 일주일 전부터

 

시민들이 고속버스터미널로 밀려와서 긴 줄을 서고 있었고 엄청난 인파로 터미널은 아주 난리가 났었다.

 

주인잃은 신발만 몇가마니가 나올 정도였다. 나와 설하사는 2층에 걸터앉아 (당시 TMO는 경부선 2층에 있었다.)

 

그 광경을 내려다 보면서 야 정리하는 경찰이 밀린다. 우리가 가서 도와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마침 TMO내무반에 9시에 원주로 후반기 교육가는 육군헌병(단풍하사) 20명이 TMO에서 시간을 기다리며

 

대기중이였다. 올커니 바로 이거다. 나와 설하사는 이들을 인솔하고 경찰과 협조하여 질서를 잡으려는

 

기막힌 생각을 했던 것이다. 20명을 세워놓고 해병 설하사 왈 (너희들은 첫번째 임무를 TMO에서 우리와 같이

 

민간이 질서잡기에 나서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불만있나?) 하면서 차렷 열중쉬어 밑으로 이동

 

나도 옆에서 하나 둘 구령맞추며 앞으로가~ 공군 병장이 육군 헌병하사(비록 임관은 못한 단풍하사지만)

 

를 인솔하니 정말 뿌듯했고 마치 우리들의 이 임무가 당연하다 생각했다. 경찰들은 20명이나 되는 키가 큰

 

헌병 병력을 보니 좋아라 했고 우린 대나무(긴 장대)까지 구해준 경찰들에게 보란듯이 대나무 장대를 휘드르며

 

질서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는 머리 어깨까지 치면서 앉아 앉아를 외치며 3시간 가까이 질서를 잡고서야

 

원주로 가는 육군 헌병들을 복귀시켰고 우린 자랑스럽게 나머지 일을 경찰에게 맏기고 그 날 개운한 마음으로

 

나와 설하사는 술한잔 하면서 마치 우리가 영웅이 된것처럼 건배를 했고 흐뭇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이른 새벽 5시쯤 TMO 문을 누가 두드리며 간첩신고 센터에서 해병 설하사와 공군 이병장을 급히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그 때 간첩신고 센터는 보안대 요원들이 파견나와 있었는데 그 때 당시는 해군방첩대

 

장상사님이 파견나와 있었다.) 아니 왠일인가 장상사님이 우리를 갑자기 호출하시니..

 

빠른 동작으로 간첩신고센터에 문을 두드렸다. 잔뜩 화가난 해군 장상사님께서 야 XX들아 너희들이 어제

 

민간인들을 몽둥이로 때려? 그것도 대기중인 육군 헌병 병력까지 인솔하고? 너희는 지금부터 잘들어라.

 

오늘 아침 신문에 만약에 터미널에서 표를 예매하러 온 민간인을 군복입은 군인들이 몽둥이로 때렸다고

 

한줄이라도 나오면 너희나 나나 군대생활 이걸로 끝이다. 어떻게 너희들은 그런 생각을 했으며 국민을 위한

 

군대가 어찌 민간인을 때린단 말이냐. 우린 그 자리에서 말이 없었다. 아 이건 대형 사고구나...

 

재빨리 우리는 가판대로 가서 조간 신문을 몽땅 구해와 샅샅이 훝어보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얘기는 한 줄도

 

없었다. 설하사와 나와는 양말 한타스를 사서 장상사님을 찾아뵙고 무릎꿇고 사죄하며 용서을 빌었다.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찔할 정도다. 그 후로 해병 설하사는 공군 갓 임관한 파이럿 소위와

 

터미널에서 치고 받는 사건까지 포함 엄청난 사건이 많았고 결국 TMO에서 쫓겨나 백령도까지 가서야

 

하사로 간신히 제대할 수 있었다. 해병 설하사와의 사건을 얘기하자면 정말 몇 일을 써도 모자라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었기에 이만 글을 줄이려 한다. 설하사는 해병하사 제대 후 소방대원으로 특채를 받아

 

지난 3월 세상을 뜰 때까지 소방반장으로 열심히 근무했다. 나와는 1년에 3~4차례 만나서 옛날 TMO일을

 

회상했고 더더욱 재미난 사실은 설하사 아들과 우리 아들이 똑같은 83년생에 생일도 똑같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해병 설하사와 공군 갓 임관한 파이럿 소위와 치고박고 싸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때문에 소위가 이해했지만 참으로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TMO 요원이 국방부 소속으로 육군에 통제를 받지만 그 때 시절에는 3군이 별도였기 때문에

 

공군 병장인 내가 고속버스회사 예매표 회의에도 참석했을 만큼 공군병장으로서의 권한이 있었던

 

시절이였다. 나는 항상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국군 TMO 공군 파견대장이라는 자부심으로 군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필승!

  • 권창겸 2011.08.19 16:46:47 삭제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 이종천 2011.05.08 17:41:29 삭제
    재밋게 잘보았습니다.
    다음편을 기대해요,
  • 문경언 2011.05.07 20:58:53 삭제
    이길성 후배님!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읽고 갑니다...^ㅎ^
  • 김학봉 2011.05.06 18:34:39 삭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吳南七 2011.05.06 16:19:26 삭제
    누구나 추억이 있는 군생활을 ...
    아마도 그시절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황금기라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지금이 황금기 일수도 있겠지만 그시절같은 청춘은 다시돌아오지 않으니
    그시절이 황금기라고 생각되네요..
    물론 나도 그시절이 최고 좋았구요....
  • 이길성 2011.05.05 09:32:21 삭제
    동기김병걸님 모임때만나도 좋지만 가까운데살면서 술좀삽시다 하룻강아지라니 너무합니다
  • 김병걸 2011.05.04 19:18:24 삭제
    나름 용감했군요 하룻강아지처럼...^^
  • 지영철 2011.05.04 11:26:30 삭제
    대단한 공군이네,,파란만장했구먼 시간나면계속해서올려주세요
  • 박재희 2011.05.04 12:10:11 삭제
    선배님 회고담 잘보고 갑니다. 필승 오리파견대장 박재희 올림
  • 정재호 2011.05.04 09:17:31 삭제
    재미나게 보고갑니다..필승 <(^^) 공군헌병!!
  • 허규철 2011.05.03 22:55:54 삭제
    잘읽고 갑니다 다음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