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영공수호를 위한 정예 공군 간부 양성을 위해 1949년 개교한 공군사관학교의 현재 졸업생은 총 85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공사 동창들의 구심점인 공사 총동창회는 성무회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모교인 공군사관학교 애칭이 성무대인 까닭으로 97년 오성회라는 이름에서 바꿨다고 한다.
공사 총동창회는 회원 상호 간 친목과 상부상조, 모교의 전통과 명예 계승, 모교 발전 기여 등을 목적으로 서울 동작구 대방동 보라매의집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사무총장과 직원 1명 등 2명의 상근 인원이 말해주듯 현재로서는 조직의 내실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 때문에 1년 단위로 각 기수에서 회장과 이사를 맡아 운영을 전담하고 있다.
공사 총동창회의 출발은 5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사 2·3·4기 생도들이 생도시절 동창회를 창설했지만 53년 공사 3기생 다수의 퇴교로 본격적인 활동도 펼쳐보지 못한 채 문을 닫게 된다.
이후 55년 김중보(1기) 생도대장의 주도로 재발족했지만 60년 4·19혁명 등의 여파로 두 번째 해체를 맞게 된다.
63년 공사 1기생(회장 천영성) 주도로 세 번째 발족했지만 10년 후인 73년 군내 사조직 금지 등 정부정책으로 다시 해체된다.
이렇듯 간단치 않은 역사를 안고 현재의 공사 총동창회가 출범한 것은 93년 4월이다. 1~6기생 회장단(손주현·박재성·심장섭·한영규·신봉림·전춘우)이 주도해 네 번째 총동창회를 발족시켰고 이 동창회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범 당시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에 마련됐던 사무실은 95년 대방동 공군회관 옆으로 옮겨 왔고 99년 현재의 사무실로 이전했다.
총동창회는 보다 쾌적한 업무 환경을 위해 2007년중 인근 공군복지단 제대군인지원실 4층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현재 정회원으로 등록된 인원은 7500여 명이고 이 중 예비역이 2500명에 이른다.
대부분의 재정은 회비에 의존하고 있지만 회원들의 회비는 전액 적립되고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회장을 맡은 기수에서 분담금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연간 2회 발행하는 동창회지 ‘성무’ 발간과 우수 졸업생 시상, 홈커밍데이, 자랑스러운 공사인 선정·포상, 친선 바둑대회, 모군 위문방문, 모교 PR을 위한 초청 간담회, 각종 조문활동 등을 하고 있다.
특히 이억수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선후배 기수 간 모임 확대와 동창회 사무실 상시 개방, 공사 교육진흥재단 활동 홍보 후원 등 동창회 활동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적극적 참여”- 이억수 공사 총동창회장
2006년 7월 총동창회장으로 취임한 이억수 전 공군참모총장은 총동창회장 취임 일성으로 ‘적극적 참여’를 강조했다.이회장은 “적극적 참여”를 강조하며 “회원 상호 간 친목을 도모하고 상부상조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이회장은 “선배와 후배, 현역과 예비역 상호간 교류도 활성화해 동문들이 화합하고 친목을 도모하면서 사회에 진출하는 후배들을 이끌어 주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과도 함께 나누는 봉사 활동도 총동창회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회장은 “공사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심신을 연마하면서 조국애와 명예를 키워 왔고 임관 후 공군은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동문들을 지탱해 주는 힘이 돼 준 곳이 공군과 공사”라며 “공군과 모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모교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급격히 변화하는 국내외 안보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도 총동창회 역할 중 하나라는 게 이회장의 말.
이회장은 “우리가 지키고 만들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수호하는 데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총동창회가 올바로 자리 잡고 나면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순직한 동문들에 대한 지원사업 등도 추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