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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공군에 입대하기까지....
박**
|Views 486
|2009.07.16
나의 고향은 경북 울진, 울진하면 옛날에 무장공비가 많이 출몰한 곳으로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1968년 11월 그러니까 내가 중3일때 (강원도 삼척군 원덕중학교) 많은 무장공비가 울진, 삼척에 침투하였다.
아마 그해 예비군이 생긴 것으로 기억 대며 얼마 후에 방위병 제도가 생긴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군에 입대할 당시는(73년도) 울진, 삼척 출신은 대부분 지역을 지키는
방위병으로 복무를 하였다.
당시 신체검사에서 갑종을 받아 현역 대상자로 분류되어 있든 차, 국방부에 근무하시던 외삼촌께서 너를 방위병으로 빼 주시겠다고 연락을 하여왔다.
바로 위에 형이 방위 2기로 동해시에서 직강생활을 하며 방위근무를 하고 있든 차라 하루 야간근무하고 또 직장 다니는 것이 영 아니었다.
에 라 지원하자 라고 마음먹고 친구 둘과 공군 지원원서를 춘천병무청에 접수를 하고, 그해(1973년) 7월에 춘천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보아 합격 한 후, 하사관에 지원한 친구는 8월에, 또 한 친구는 10월에, 나는 12월(병 241기로)에 대전 교육사령부에 입교 하였으나, 가 입교 1주일 동안 신체검사에서 충치 2개로 한달 귀향 하게 되었다.
충치를 치료하여 74년 2월 1일 교육사에 242기로 다시 입대하여 33중대 3구대에서 신병훈련을 받게 되었다.
1주일후 군복을 받는 날 구대 행정병을 뽑는 것이다. 그 당시 내무반장님이신 백 ** 일병(238기로 기억됨)님이 과거 은행원 생활한 사람 손들라는 것이다. 잽싸게 손들었더니 어느 은행에 근무하였는지 ~~ 몇 가지 사항을 묻고는 행정병으로 지명하여 다른 동기들 보다는 좀 수월히 내무생활을 하였다.
그날 일부는 귀향하고 최종 합격한 장병은 사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고 본인이 소지한 현금을 전부 파악하여 내무반장님을 통하여 예치하였다.
그 후 점호가 끝나고 취침 시간이 되면 내무반장님과 가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백내무반장님이 신병 훈련이 끝나고 행정특기를 받아 18전투비행전대(그 당시는 대대와 단 중간의 부대로 부대장은 대령 임)에서 2개월 경비를 서고 교육사로 배치 받아 내무반장을 하게 되었다며 강릉의 2달이 너무나 좋았다며 강릉상고를 나온 나를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시며 가끔 밤에 배고플 것이라며 주전자에 밥을 갖고 와 먹으라면서 주는 것이다.
다른 동기들은 잠자는데 혼자서 몇 차례 밥을 먹은 기억이 난다.
6주 훈련 다 마친 날 내무반장님이 예치한 돈을 나누어 주라며 주는 것이다.
그런데 잔돈은 얼마 안 되고 만원권 위주로 전액을 나에게 주시는 것이다. (만원권이 1972년도에 나온 것으로 기억됨)
다들 수료하는 기분에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며 만원 단위로 받아 가는 것이다.
그 당시 잔돈을 교환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25,000원 맡긴 사람은 20,000원만 주고 나니 마지막까지 주고 남은 돈이 46,000원 정도 남는 것이다.
백 **(대전 출신으로 기억됨) 내무반장께 돈이 이렇게 남았습니다 라고 하며 더리니 백내무반장님이 “야! 빨리 넣어 특기교육(81특기를 받았다) 밭으로 가서 필요하게 쓸데가 많으니 갖고 가 요긴하게 써” 라며 주시는 것이다.
밤 11시 20분경 특기별로 대전역으로 향하여 교관님들의 환송을 받고 대전발 0시 50분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20명의 동기생이 수원역에 도착하니 새벽 6시 정도 되었다.
수원역에 도착하니 10비 헌병대에서 선배 2명이 마중을 나왔다.
수원역 앞에서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고 트럭을 타고 달려 달려 도착하니 많은 개들이 짖어 대는 것이, 아니 왠 개소리가? 내리고 보니 10비 훈육대인 것이다.
또 다시 훈육대에서 6주간 군견훈련을 받게 되었다.
6주간의 군견훈련을 받고 우리 기수부터 10비 헌병대대 경비중대에서 2달 동안 경비 근무를 서고 자대 배치를 한다며, 10비 헌병대대 경비중대로 배치하는 것이다.
당시 경비중대장님은 노 윤수 중위님(대구 영남대 출신으로 4개월후 18비 헌병대 행정계에서 행정계장님으로 모시고 근무하게 됨)으로 라인 정문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같이 지원한 친구 두 명을 수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신 ** 하사는 관제특기로 타워에 근무하고 또 한 친구 정 ** 통신대에 근무하고 ~~
경비중대 근무 시 기관사병(헌병 선배)들이 취침중인 밤 1시만 되면 깨워 빳
다를 치는지 곡 갱이 자루로 보통 10대씩 패고 잠을 재우는 것이다.
20명중 군번 순으로 내가 4번째고 내 뒤는 대구출신 허이병 (이름이 기억이 안 나며 좀 약골이었다)으로 곡 갱이자루로 맞다가 졸도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다. 1~3번 나까지 10대씩 맞고 허이병이 졸도 한 후 고참 병장님들이 사태를 파악 한 후 경비병들에게는 기관 사병들이 기합을 못주게 단속하여 그 후로는 편히 잠들 수 있었다.
2개월간 10비 헌병대대 경비중대에서 경비 근무를 마치고 성남 비행장에 4명이 배치되어, 성남비행장 인사처에서 1주일 대기후 한 명은 김포에 두 명은 성남에, 나는 18비행전대 헌병대로 전임을 명받고, 6월 25일 청량리역에서 TMO 편으로 강릉으로 가게 되었다.
( 다음에 강릉에서 군 생활을 올릴 계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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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2010.10.26 09:18:21 삭제임 달영준위님 반갑습니다. 유 갑현동기 지금도 연락하고 있습니다.
평택에서 사업하고있지요.
댓글 늦게보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건강하시길..... -
이재현 2010.07.05 02:17:13 삭제박종문 후배님! 반갑습니다..저는 헌병병과로 지독한 군견훈련소 경험
10비 활주로 건너편에 군견훈육대(군견훈련소)가 사람을,,, 개취급
하는곳 밤이면 멸명이 충청도 옥천이고향인 호보(개이름)병장이 일렬로세워놓고 1시간씩 설교하고 1대씩 곡굉이로 빠따치면 기수빠따로 변하여 기수별로 내려가면서 1대씩 더붙어서 10기면 제일쫄병은 10대씩 맞았지 못도빼지않은 폐각목으로 말이요,,,,밤이면 생지옥으로 변하였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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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달영 2010.01.19 11:40:29 삭제반갑습니다,
병242기 입대일자는 1974년2월1일로 기억하고 있읍니다만
조금 착각하시는것 같네요
저도역시 부사관 72기로 연병장 동기생 기수로 알고 있읍니다만.
그래서 30단시절 유갑현씨, 16비(예천)시절 김용철씨등과 친하게 지낸기억이 있어요, 저도 약35년정도 하고 2008년도에 헌병준위로 전역하였읍니다
정말반갑습니다. 건강하시고 복많이받으세요 -
윤석오 2009.07.22 18:58:07 삭제그때는 그렇게 곡갱이 자루로 맞는 시절이였나 봅니다. 남들은 공군을 갔다고 하면 "편한 군대 생활 하네"라고 통용이 되었던 시절이였는데 실상은 그렇게 매일같이 얻어 맞고 자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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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겸 2009.07.17 15:26:58 삭제기대됩니다.......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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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석 2009.07.17 17:11:17 삭제선배님 글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다음글 기대합니다. -
문경언 2009.07.17 13:12:24 삭제ㅎㅎㅎㅎㅎ
박종문 후배님! 반갑습니다...
공군에 입대하기까지의 글을 잘보구 갑니다...
그리구 세계자연유산 평화의 섬으로 정중히 초청합니다...^ㅎ^